2017/01/29 15:03

Ian Watson, <The Embedding>(1973) melt the stars

이언 왓슨, <내포內包>(1973)


언어학 SF의 명작, 대작, 고전이라고 하는 작품으로, "내가 무언가 엄청나고 심오하고 대단하고 우주의 끝 같은 것을 보여주마!"하는 1970년대스러운 소재와 야망이 넘친다. 비밀 시설에 아동들을 가둬놓고 하는 언어 실험, 촘스키의 "보편 문법"은 당연히 나오고, 비트겐슈타인, 러시아의 의식 실험, 약물을 사용한 뇌기능 부스팅 실험, 브라질의 독재정권과 게릴라, 아마존 원주민 부족의 의례와 샤먼과 환각을 일으키는 식물, 아마존의 댐과 자연 파괴, '완전한 의식'의 경험... 여기에 외계인까지 지구를 방문한다. 이것들을 하나로 엮는 키워드가 언어학의 "내포embedding". 내포가 계속되는 문장처럼(예를 들어 이런 문장. "마을 재단사가 지은 멜빵 바지를 입은 페인트공이 노랗게 칠한 지붕 위에 꼿꼿이 선 수탉을 멍하니 쳐다보던 강아지가 앞발로 친 고양이가 맹렬히 쫓던 뱀이 한 입 물은 개구리가 던진 돌에 맞았다"), 무언가를 열면 무언가가 들어있고 이 무언가를 열면 또 무언가가 들어있고 하는 식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끝부분에서 결국 주인공은 어찌어찌 의식의 한계에 도달하지만 나는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는 세 축으로 진행되는데 그 중 한 축이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들이다. 어딘가 모르게, 아니 확실히 정신 나가 있는 집단으로 내가 태어나서 보고 듣고 읽은 외계인들 중 가장 싫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외계인 설정 정리병이 있으므로 설정을 정리해보겠다.



어느날 지구 상공에 엄청 거대한 "구Globe"가 나타나고, 우주정거장에서 작업 중이던 우주인들이 "구" 안으로 가 외계인들을 잠시 만나고 그들에게 영어 회화 테이프(!)를 건넨다. 외계인들은 지구(=미국)에서 나오는 텔레비전 전파를 잡아서 시청 중이었기 때문에 이미 영어를 할 줄 알았지만 테이프를 들으며 회화 실력이 더욱 쑥쑥 자라났다. 그리고 외계인들은 지구(=미국)로 내려와 인간들과 회담을 갖기로 한다.












"구"에서 튀어나오는 저것을 타고 외계인이 지구에 내려온다. 뭉툭한 원통형으로 높이 약 100m, 지름 약 30m이다. 추진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소음도 없고, 창문도 없고, 수직안정판도 없고, 빛도 나오지 않는다. 착륙 후 지구 사절단이 이 원통에 다가가자 한쪽 구석에서 둥근 출입구가 열리면서 경사로가 땅으로 스스륵 내려오고, 드디어 외계인 한 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사로를 따라 땅으로 내려온 이 외계인은 입을 여는데, 그 말은 바로!




















유창한 이스트 코우스트 잉글리쉬였다고 한다.

"좋은 별에 사시네요. 언어가 몇 개나 되지요?"

(내가 이 외계인들을 별로 안 좋아하다보니 번역도 저절로 빈정대는 투가 된다. 좋은 데 사시네~~)

외계인들은 TV 프로그램과 우주인들이 건네준 영어 회화 테잎으로 3일만에 미국 영어를 마스터했다. 자신들에겐 "언어 기계"라는 게 있어서 "신경에 바로 프로그래밍하기"로 언어를 배우기 때문에 빨리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언어를 관장하는 뇌 부위에 바로 읽고 쓰기를 해서 뇌에 언어를 각인하는 것이다. 해당 언어가 보편 문법 법칙들을 따르는 한 이런 식으로 쉽게 배울 수 있다고.

미국인들에게 너무 편리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유창한 영어로 이 외계인은 자기 종족과 방문 목적에 관해 설명한다.

이들 종족의 이름은

"스프'뜨라"

라고 한다. 중간의 어파스트로피는 뭐냐면, 이 외계인들은 말할 때 초음파와 초저주파음를 섞어 말하지만 인간들은 이 영역대의 소리를 듣지 못하므로 인간들을 위해 빼고 발음한 것이다. 지구에 내려온 이 개별 개체의 이름은 "프'떼리Ph'theri"이다.

나는 여기서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장면은 신하균이 초음파와 초저주파음을 섞어서 외계인 이름을 발음하려 노력하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스프'뜨라"라는 이름은 '언어를 거래하는 자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면서, 자신들을 언어학자, 또는 소리를 흉내내는 이들이라고 소개한다.

스프'뜨라 종족은 어디서 왔는가: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와 같은 나선팔 위에 있지만 태양계보다는 은하 중심부로 훨씬 들어간 곳(지구에서 1,103광년)에 있는 두 개의 행성에서 왔다. 이 행성들에는 지구의 태양보다 조금 더 큰 주황빛의 태양이 있다.

스프'뜨라 종족은 왜 지구에 왔는가: 
스프'뜨라들은 수만 년 전에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이 존재들이 떠나버린 후로 채워지지 않는 갈망에 시달리면서 계속 떠나버린 사랑을 찾고 있다(앞에서 말했듯 정신 나간 집단이다). 그 존재들은 "이-현실"이 아니라 "다른-현실"에 있고, 스프'뜨라들은 그 "다른-현실"로 가기 위해서 우주를 돌아다니며 언어를 수집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한 언어에는 세계를 보는 방식이 담겨 있다는 워프 가설이 들어오는데, 이 소설에서는 좀 더 과격하게 한 언어=한 세계가 된다. 스프'뜨라가 하려고 하는 일은 바로 모든 언어를 모아서 겹치는 것이다. 모든 언어(=모든 세계)를 모아서 겹치면 "이-현실"을 넘어서 "다른-현실"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지구에도 언어를 수집하러 온 것으로, 프'떼리는 사절단에게 지구인의 신선한 뇌 여섯 개(각기 다른 언어 사용자의 뇌)를 요구한다. 자신들의 "언어 위성"에 저장해둘 것이라면서. 그 대가로 인간들에게 우주 여행 방법을 좀 가르쳐주기로 거래를 한다. 역시 정신 나간 집단...

더 자세한 줄거리 설명과 작가가 "내포" 개념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은 아래 링크 참조.
http://tenser.typepad.com/tenser_said_the_tensor/2006/04/the_embedding_b.html
블로그 주인이 언어학 전공자이자 SF 마니아이다.

(이 사람의 코멘트에서 보고 웃었던 부분: 지구인들이 이후 스프'뜨라들에게 제공하기로 한 뇌는 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에스키모어, 베트남어, 페르시아어 사용자의 뇌인데, 이 중 셋이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고. 인간들은 빨리 구할 수 있는 대로 아무 뇌나 가져온 것 같고, 스프'뜨라들은 무슨 언어인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는 코멘트가 웃겼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LSD 냄새가 나는 것 같은 SF였다(LSD에 냄새가 있는지 저는 정말 모릅니다). 작가는 독자의 뇌에 과부하를 일으키려 몹시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다른 SF '고전 대작'도 함께 읽었더니 정말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책도 "내가 무언가 엄청난 걸 보여줄게. 내가 널 우주의 끝으로 데려가지. 하하하하하하하!!!!!" 이런 태도였기 때문에... 시대가 그러했다고 이해하고 앞으로 이런 종류는 피하겠다. 

과연 스프'뜨라들은 데이터 베이스에 인간 뇌 여섯 개를 추가한 후 "다른-현실"로 가서 님을 만났을까? 내가 이 결말을 보려고 끝까지 겨우겨우 읽었기 때문에 쉽게 말해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스프'뜨라들이 얼마나 되는대로 언어를 모으고 있는지만 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종족이 제대로 해내는 일은 없으리라는 사실을...
 


<끝>







덧글

댓글 입력 영역